지명 |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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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곡 | 보라매동 북부 714번지 일대 마을로 당골이라고도 불리었다. 지금의 당곡초등학교와 당곡시장의 뒷편이다. 옛날에 관악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로 전주 이씨가 많았다고 한다. 당곡이라는 이름은 예전에 이곳이 골짜기였으며 이 골짜기에 제당을 짓고 무당이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
호리목 | 성현동에서 은천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현대시장 일대다. 지형이 호리병처럼 오목하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에서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능고개라 하였다. 상도동을 넘어서면 양녕대군 묘가 있기 때문이다. |
화다리 | 봉천동 963번지 주변에 활터가 있었고 그 활터를 가기 위한 조그마한 다리가 있어 그 다리를 화다리로 불렀다. 본래의 명칭은 활다리였으나 구전되면서 화다리로 변칭되었다고 하며, 이곳에 마을주민들이 모여 활쏘기 등의 놀이로 화합과 협동정신을 다졌다. 현재는 택지개발로 사라지고 없다. |
원당 | 행운동 낙성대역에서 장미원 아파트를 지나 사당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부근의 마을로서 원당이라고 하였다. 예전에 사당이 많이 있었다 하여 사당동이라고 칭하였고 원당은 사당 웃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
청능말 | 청룡동 청룡산 밑에 있는데 지금의 청룡시장 부근이다. 옛날에 능이 있었다고 하며, 강감찬 장군이 말을 타고 이 마을 뒷산을 지나다가 유달리 푸른 것을 보고 능자리로 좋은 곳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
까치고개 | 지금 남부순환로의 봉천동과 남현동 사이 고개로서 옛날 이곳에 수목이 우거져 까치가 많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일명 작현, 가추개라고도 한다. |
쑥고개 | 청룡동에서 서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숯을 많이 구웠는데 이에 따라 숯고개라 불리우다 쑥고개로 변했다. |
연번 | 기존 동명 | 새로운 행정동 명칭 | 선정 유래 및 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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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봉천본동 봉천9동 |
은천동 (殷川洞) |
우리나라 3대 대첩 중 하나인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자 은천동으로 선정 |
2 | 봉천2동 봉천5동 |
성현동 (成賢洞) |
예로부터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 전해 내려오는 곳으로 어질고 현명한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라는 뜻에서 성현동이라 선정 |
3 | 봉천4동 봉천8동 |
청룡동 (靑龍洞) |
청룡이란 명칭은 이 지역에서 청룡(靑龍)이라 새겨진 돌이 발견되었고, 산의 모양새가 마치 용의 형상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청운의 높은 뜻을 상징하는 용을 동 이름으로 칭함으로써 지역에 길운이 있기를 기원하여 청룡동이라 선정 |
4 | 봉천1동 | 보라매동 | 서울 서남권의 대표적 공원인 보라매공원이 인접한 곳. 보라매공원은 공원 개원 전 공군사관학교가 자리했던 곳으로, 주민들에게 익숙한 명칭인 보라매동으로 선정 |
5 | 봉천3동 | 청림동 (靑林洞) |
나무가 꽉 들어찬 푸른 숲이란 뜻으로 靑은 봄, 동쪽, 젊음을 뜻하며 희망찬 마을을 상징하는 청림동으로 선정 |
6 | 봉천6동 | 행운동 (幸運洞) |
참신하고 느낌이 좋을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늘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행운동으로 선정 |
7 | 봉천7동 | 낙성대동 (落星垈洞) |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터로 장군이 태어나던 날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진 것을 보고 송나라 사신이 큰 인물이 날 것임을 예언했으며, 훗날 ‘별이 떨어진 터’라는 뜻의 낙성대라 이름 짓고,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삼층석탑을 세웠다고 하여 낙성대동으로 선정 |
8 | 봉천10동 | 중앙동 (中央洞) |
봉천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상업시설이 발달한 지리적으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관악발전의 중심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중앙동으로 선정 |
9 | 봉천11동 | 인헌동 (仁憲洞) |
고려시대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 장군이 고려 9대 덕종 1031년 8월, 장군의 위업에 인헌으로 시호를 받은 바, 장군의 시호를 따 인헌동으로 정함 |
지명 |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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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방벌 | 남현동 관음사 아래에 있던 마을 이름 또는 들 이름이다. 남현동의 작은 마을로서 본래 남태령 가까이에 있던 남태령과 심방뜰이 있었으며 큰 마을도 아니고 몇 집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
남태령 | 옛날부터 여우고개라고 불려져 왔으나 조선시대 정조가 지극한 효성으로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며 능을 참배하러 행차하던 중 과천현 이방에게 고개 이름을 물은 즉 "서울에서 남쪽으로 맨 처음 큰 고개이기에 남태령이다"라고 아뢴 것이 현재의 고개 이름이 되었다. |
연번 | 기존 동명 | 새로운 행정동 명칭 | 선정 유래 및 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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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남현동 | 남현동 (南峴洞) |
남쪽에 있는 고개마을이라는 뜻으로 南泰嶺(남태령)에서 유래됨 |
지명 |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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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은말 | 보그니마을 이라고도 하는데 현재의 서림동 108번지 일대로 옛날 이 마을에 돈 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 복이 숨어 있는 마을(福陰村)이라는데서 유래하였다. |
탑골마을 | 지하철 낙성대 입구역에서 낙성대까지 인헌초등학교 뒷편으로 자연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이곳 동네 이름을 탑골이라 불렀다.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로 장군의 생가터는 성역화 되었으나 탑골마을은 주거지로 되었다. |
양지마을 | 광해군 7년(1615년) 좌부승지 윤길이 폐비를 반대하여 광해군의 진노를 사 지금의 삼성동 지역으로 피신하여 정착하였고 둘째아들이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성주목사에 제수되었다. 인조임금은 윤길에게 관직에 나와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나오지 않아 인조임금이 윤길을 찾아 행차하였을 때 양산을 쓰고 행차하였다 하여 양지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
서원말 | 지금의 신림사거리 일대에 있던 마을로 관악구에서 제일먼저 시가화된 지역으로 이곳에 서원정의 정자가 있어 강감찬 장군이 송도(개성)를 왕래할 때 자주 들렸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
합실 | 삼성동 335, 336번지 주변 일대로 지형이 큰 조개모양을 하고 있어 합곡이라 적었던 것을 소리와 뜻을 옮겨 합실이라고 하였다. |
난곡 | 유래가 분명치 않으나 강홍립 장군이 유배되어 은거할 때 난초를 많이 길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
은천길 |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 장군이 어린시절 활쏘기, 말타기 등의 무예를 연마하던 곳이라 하여 장군의 어린시절 이름인 은천(殷川)을 붙여 은천길로 명명되었다. |
자하골 | 서울대 부지로 편입된 이곳은 의성 김씨가 수백년간 터전을 닦아 온 곳으로 조선 말 시 서 화로 이름을 떨친 신위 선생의 아호인 자하에서 유래되었다. |
살피재 고개 | 옛날 농로로 사용되었으나 산적과 여우의 출현으로 통행인에게는 무서운 고개로 어원은 고개를 넘을 때 좌우를 살펴보고 넘으라는 것인지, 고개는 높고 험한데 서민생활은 고달프고 어려움이 많아 고생스럽고 힘들어 슬프다는 의미인지는 분명치 않다. |
연번 | 기존 동명 | 새로운 행정동 명칭 | 선정 유래 및 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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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신림본동 | 서원동 (書院洞) |
신림사거리 지역은 강감찬 장군이 송도를 왕래할 때 자주 들렀다는 서원정이라는 정자가 위치하고 있어 서원말이라고 불리었는데 여기서 유래해 서원동으로 선정 |
2 | 신림1동 | 신원동 (新源洞) |
신림지역의 근원이 되는 동으로 여기에서 신림동의 여러동이 분동 되었으므로 신원동으로 선정 |
3 | 신림2동 | 서림동 (瑞林洞) |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나는 복스러운 동네로 사람들이 살기 좋아 많이 모여사는 착한 사람들의 정겨운 마을 |
4 | 신림3동 신림13동 |
난곡동 (蘭谷洞) |
조선 중종 때 우의정을 지낸 강사상의 아들로 승지 등의 벼슬을 지낸 강서의 호인 ‘난곡’을 딴 이름으로 강서의 묘가 난곡동 선영에 있음 |
5 | 신림4동 | 신사동 (新士洞) |
기존 명칭인 신림4동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위해 신사동이라 선정 |
6 | 신림5동 | 신림동 (新林洞) |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신림역을 축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상권의 중심지이며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상징하는 신림동의 대표적인 동네임 |
7 | 신림6동 신림10동 |
삼성동 (三聖洞) |
신라 문무왕 당시 윤필대사, 의상대사, 원효대사가 수도하여 3명의 성인이 탄생했다는 데에서 삼성산이라 불려지게 되었으며 호국 불교의 본산지로 삼성산의 정기를 따 삼성동으로 명명함 |
8 | 신림7동 | 난향동 (蘭香洞) |
조선시대 명장 강홍립 장군이 말년에 일생을 마친 곳으로 장군이 은거할때 난초를 많이 길렀다는 데서 유래된 명칭으로 난초의 그윽한 향기가 느껴진다고 하여 난향동으로 선정 |
9 | 신림8동 | 조원동 (棗園洞) |
예부터 마을에 대추나무가 많다고 하여 대추나무 마을이라 불리었는데 거기서 유래한 명칭으로 대추나무 棗(조)와 동산 園(원)을 사용하여 조원동으로 선정 |
10 | 신림9동 | 대학동 (大學洞)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가 위치하고 고시원이 밀집된 곳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동네로써, 지역사회 인재를 양성하고 교육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의미에서 대학동으로 선정 |
11 | 신림11동 신림12동 |
미성동 (美星洞) |
아름다운 별이란 뜻의 미성(美星)은 현 문성골길의 옛 이름으로 현재 미성초등학교와 미성중학교도 위치하고 있어 미성동으로 선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