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남현동 요지는 규모가 1,488㎡(450평)로 백제 때 질그릇를 굽던 가마터로, 1973년 4월에 발견되어 1976년 4월 10일 사적 제247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붉은색 흙이 많아 질그릇 생산지로 적합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는 질그릇 조각들이 불에 탄 흙과 재에 섞여서 발견되고 있고, 사선을 어긋나게 그은 문살무늬를 가진 것이 주로 보이고 있어 백제 후기의 가마터로 추정되었으며, 지금까지 서울지역에서 알려진 유일한 백제 가마터로, 비록 파괴는 되었으나 백제 질그릇 생산 기술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2006년 10월) 서울대 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백제요지와는 관련이 없는 통일신라 후기(9세기대)의 요지와 관련된 폐기장 유구로 추정되며, 사적경계 바깥쪽 구릉에 통일신라시대의 요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새로운 의견이 제시되었다.

구 벨기에 영사관은 서양의 고전주의(古典主義) 양식 건축물로 서울시 중구 회현동에 지하1층, 지상2층 의 규모로 1905년 준공되었으나, 1983년에 지금의 남현동으로 이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 전문위원들의 도움으로 복원되었다. 2004년 5월 우리은행이 서울특별시에 무상 임대하여 공공미술관으로 새롭게 꾸며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조성, 2004년 9월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참나무과에 속한 낙엽교목이며, 굴참나무는 일본, 중국 및 우리나라에 분포하며 줄기에 코르크가 발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는 높이 17m, 가슴높이 둘레 2.5m, 나무 밑부분의 둘레가 2.9m에 달하며,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 .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 보호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1,000년 전에 강감찬 장군이 이곳을 지나다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서 현재와 같은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인근에는 장군이 별당으로 사용하였다는 칠불사(현 은천사)가 있으며, 실제 나이는 약 250살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연 1회, 10월에 수명보존(목신)과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례행사인 당산제를 개최하고 있다.
처용무란 처용 가면을 쓰고 추는 춤을 말한다. 궁중무용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오방처용무’라고도 한다. 통일신라 헌강왕(재위 875∼886) 때 살던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 : 전염병을 옮기는 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귀신을 물리쳤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처용무는 5명이 동서남북과 중앙의 5방향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추는데 동은 파란색, 서는 흰색, 남은 붉은색, 북은 검은색, 중앙은 노란색이다. 춤의 내용은 음양오행설의 기본정신을 기초로 하여 악운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다. 춤사위는 화려하고 현란하며, 당당하고 활기찬 움직임 속에서 씩씩하고 호탕한 모습을 엿볼 수 있고, 가면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후기까지는 한 사람이 춤을 추었으나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다섯 사람으로 구성되었고, 성종(재위 1469∼1494) 때에는 더욱 발전하여 궁중의식에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조선 후기까지 노래의 가사나 음악을 바꾸어가면서 전승되어 왔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기면서 중단되었던 것을 1920년대 말 이왕직 아악부가 창덕궁에서 공연하기 위해 재현한 것을 계기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