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지역연계형 청년예술활동 지원사업 성장지원프로그램
지난 5일(수) 관악문화재단 대강의실에서 2020 지역연계형 청년예술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된 청년예술인 5명과 지역에 관심 있는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이해 워크숍을 열었다. 이번 행사는 청년예술활동가들이 지역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실험 활동을 하며 앞으로 지역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의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청년예술인 5명을 소개 후, 바로 서울대 문헌학자 김시덕 교수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주황색의 1914년, 노란색 1936년, 연두색 1949년, 하늘색 1963년, 1973년, 1995년. 색깔로 표시된 지도에서 점점 확대되어가는 서울의 모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의 역사와 자원 탐색이 시작되었다. 1936년 서울이라는 도시가 강남을 흡수하기 시작하였다. 강을 끼고 하나의 도시가 있는 곳, 서울과 같은 도시는 드물다. 하나의 도시이기 때문에 강북과 강남을 이어줄 다리를 많이 만들게 되었다. 마포나루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항구의 역할을 하기가 어려워 바다를 낀 인천까지 서울로 만들고 싶었다. 흥미로운 서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우리가 사는 도시 관악’이라는 주제로 더 심도 깊은 강연이 진행되었다.
1973년 7월 1일 관악구는 영등포구에서 분리 신설되었다. 1980년에는 관악구 지역의 노량진동, 상도동 등을 분리시켜 동작구를 신설하였고, 방배동 일원과 사당동 일부를 강남구로 편입시켰고, 사당동 일부는 관악구에 편입시켜 남현동으로 하였다. 관악구의 연혁에 따른 구조의 이해를 들으며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림동’ 이라 적힌 나무 문패 사진도 보았다.
신림중앙시장의 독툭한 건물 구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린 난곡을 살펴보았다. 1967년 대방동 뚝방길 지역을 대거 철거하며 주민을 이곳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무리한 집단 이주로 공동묘지 이장과 이주가 동시에 진행되어 落骨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서울의 3대 달동네 밤골마을에서 봉천동과 신림동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경기도 시흥군 동면 봉천리가 서울시 영등포구로 편입되어 봉신동이 되었다. 현재의 서울대입구역 동북쪽, 봉천3동(지금의 청림동)이 ‘수재민촌’으로 지정되어 홍수 피해를 입은 강북 지역의 이재민들이 집단 이주하였다. 봉신동이 봉천동과 신림동으로 나뉘었다. 빈곤함의 이미지가 있는 봉천동과 신림동이라는 법정 이름은 남겨두고 행운동, 신사동, 삼성동, 난향동 등 행정동 이름을 새로 붙이면서 이미지 변신이 시작되었다. 복개천 주변에는 빈민촌과 점집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이는 도시 속의 소하천 주변이 개발에서 밀려나면서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강연자는 말하였다. 봉천천 복개구간, 서울대학교, 남태령 부대, 남현동, 벨기에 영사관, 남묘까지 관악의 역사와 자원을 탐색하게 도와주었다.
<예술:첫 관문> 지역이해 워크숍은 관악구의 다양한 역사와 자원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지역을 이해하여 활동의 폭을 넓히고, 예술적 시선을 토대로 관악을 가치있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유·무형의 역사가 공존하는 관악에서 소실 되어가는 동네 골목길 모습을 보며 예술로 사유하며 탐방할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진다.
이 밖에도 관악문화재단은 코로나19로 설 자리를 잃은 지역예술가(단체)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공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관악구만의 스토리 및 문화콘텐츠 발굴을 위해 예술인(단체)에게 총 5천만 원의 창작지원금을 지원하는 ‘관악 우수창작 문화콘텐츠 지원사업’을 통해 총 4개 팀을 선정하였으며, 강감찬장군 설화를 바탕으로 한 어린이 뮤지컬, 신림동 고시원을 배경으로한 낭독극 등 관악구 지역자원을 활용해서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적극 발굴하고 있다.
8월 첫돌을 맞이한 관악문화재단은 ‘모두의 예술이 찬란한 문화로’ 라는 비전 아래,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민들에게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예술을 통해 위로와 기쁨을 드리기 위해 모든 임직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오늘도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재단의 선한 영향력으로 인해 달라진 관악의 문화와 예술이 기대되는 이유다.